수요 가정예배문 2020년 4월 8일(수) □ 본문 : 요한일서 4:9-11 □ 제목 : 왜 날 사랑하나 □ 찬송 : 143 왠 말인가 날 위하여 고난주간을 보내며 맴도는 찬양이 있습니다. “왜 날 사랑하나?” 예수님 날 위해 죽으셨네 왜 날 사랑하나 겸손히 십자가 지시었네 왜 날 사랑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했나 왜 날 사랑하나 손과 발 날 위해 찢기셨네 왜 날 사랑하나 고난을 당하여 구원했네 왜 날 사랑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했나 왜 날 사랑하나 이 찬양은 “왜 날 사랑하나?”하며 질문으로 끝난 것 같지만, 이 “왜”라는 물음은 “제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셨어요?” 하며 따져 묻는 것이 아님을 우리 가슴은 알고 있습니다. “주님! 이 부끄럽고 자격 없는 저를 왜 사랑하셔요.” “주님! 왜 저 때문에 고통당하셨어요. 그냥 두시지, 왜 저 때문에 십자가에 못까지 박히셨어요.” “주님, 제가 뭐라고... 왜 저 때문에요... 왜 이렇게까지요...” 그리고는 결국, “주님... 감사합니다......” 하는 “고백”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고백적인 물음 “예수님께서 왜 날 사랑하셨을까?” 날 위해 십자가 지시고, 날 위해 죽기까지 하셨다는데, 굳이 나 하나 살리자고 목숨까지 바치셨다는데, 왜 그러셨을까? 오늘 이 물음을 붙잡고 말씀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엄마는 저를 왜 이렇게 사랑하세요?” 엄마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엄마니까!” 이 한마디로 모든 답이 된 것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왜 날 사랑하나?” 우리의 물음에 하나님께서 하실 대답도, 이 한마디일 겁니다. “아버지니까!” 이 대답에 담긴 뜻이 무엇입니까? 네가 내 자녀이니까, 부모가 내 자녀 사랑하는 것이야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찌 부모의 사랑이 당연한 것입니까? 그런데 우리 부모님들은 당연하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사랑을 해주십니다. 그 자녀가 잘해서, 잘나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자녀의 존재 자체로 목숨처럼 소중한 겁니다. ‘본능적으로’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바로 이렇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에 보니까요,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겁니다. 값없이 조건 없이 사랑하신 겁니다. 왜요? “아버지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요,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 자녀이고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시니까, 우리에게 전전긍긍하시는 것으로 여기면 안됩니다. 하나님 좋자고, 하나님 마음 안 아프시려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으로 여기면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배짱부리면 안됩니다. 물론,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반드시 살려내고자 하셨지만! 그래서 독생자까지 보내주셨지만! 그 “반드시”라는 것은요, 하나님 사랑의 본성에 기인한 것이지, 우리가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겁니다. 우리들이 고귀하고 보배로운 자녀인 건 맞는데요, 하나님께서 고귀하게 “보아”주시고, 자녀 “삼아” 주시니 그런 것이지, 내 자체가 높디높아서 하나님께서 내게 쩔쩔매시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하니,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기뻐하길 원하신다 하니, 우리가 뭔가 하나님께 해드리고, 우리가 안하면 하나님께서 큰 일 나시는 것처럼 여기면 안된다는 겁니다. 그저 우리는 하나님 사랑의 신비 아래서, 그저 은혜로, 그저 전적인 은혜로! 존귀한 자녀로 살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럼,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얼마만큼” 사랑하셨습니까? 죽음도 불사할 만큼, 독생자를 내어 주실 만큼, 사랑하셨습니다. 자녀가 위기에 처하면 부모는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 하지요. 우리 하나님도 그런 심정이셨을 겁니다. 결코, 십자가 희생양의 자리가 무겁고 고통스러워서, 자신은 피하고 아들 예수님을 대신 보내신 게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죽는 것보다, 더욱 극심하게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비의 고통스런 심정을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감내하신 겁니다. 그 고통의 징벌을 우리 대신에 예수님께서!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받으신 겁니다. ‘나 하나’ 살려내시겠다고 그렇게 하신 겁니다. 혹여라도 이런 물음들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특히, 믿지 않는 분들은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반문이겠지요. “우리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왜 사랑하는가? 내가 언제 사랑해 달라 했는가?” “왜 대속해 주시고,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가?” “내가 살려달라, 구원해달라 한 것도 아닌데, 내가 돌아가시라, 십자가 지시라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런데요, 부모님을 떠올려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우문인지 알게 되지요. 만일, 누가 부모님 사랑을 두고 “누가 사랑해 달랬어요? 내가 왜 감사해야 해요?” 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철부지”라고 부르겠지요. 이렇게 부모님께 대입해보니 우리의 입장이 명확해집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감격이고, 얼마나 감사인지 말입니다. “왜 구원했어요? 왜 맘대로 구원하고, 왜 내가 감사해야 해요?” 한다면, 철없는 투정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취할 태도는 ‘오...주님...’ 오직 감사뿐인 겁니다. 지금은 고난주간입니다. 주님은 이 사랑을 완성하시려고, 십자가의 길로 들어서신 겁니다. 십자가 말고는, 예수님 말고는, 우리를 구해내실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길이 될 것을 아시면서도, 배신당하고, 붙잡히시고, 조롱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살이 찢겨나가고, 물과 피를 쏟으실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 살리시겠다고 내 죄를 모두 짊어지시고 그렇게... 뛰어드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요!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장대한 러브스토리입니다. 그 러브스토리의 절정, 최고조의 사랑이 바로, 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내가 죽어야, 너희가 산다!” 목숨을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우리는 갚을 길이 없어요. 다 갚을 도리는 도저히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신 일을 하는 것이죠. 바로, 가장 큰 계명이자, 새 계명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겁니다. 우리의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요?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죠. 이게 죄이고, 사망의 길입니다. 그럼, 살려면, 그 구원의 열쇠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없인 살 수 “없다”하는 것이죠. “하나님 없이는, 한시도 살 수가 없어요!” 이 고백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요, 이걸 당부 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꼭 붙어서 살아! 하나님 사랑하며 살아!“ 이걸 원하신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부디, 서로서로 사랑하며 살아!” “내가 너희 사랑했던 거 기억하면서, 그렇게 서로를 사랑해줘. 그게 내가 바라는 거야. 그게 마땅해.(요일 4:11)” 하신 겁니다. 마치, 부모님께서 마지막 유언으로 형제간 우애해라 내 원은 그것뿐이다 하시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날 사랑하나?” 이 물음으로 오늘 설교를 시작했었습니다. 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버지니까.” 아버지의 애끓는 사랑의 본능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겁니다. 그 아버지가 목숨을 바쳐서 사랑한 인생이 바로, “나”입니다. 여러분, 용기내시고! 힘 있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랑하라!” 하시는 주님의 외침에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이토록 나를 사랑하셨으니, 우리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 합니다. (요일4:11) 예수님께서 지고가신 이 고난의 십자가는,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바라기는, 그 사랑의 십자가를 마음에 새기고, 또한, 내 일상의 삶 속에 새겨나가는 고난주간 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 기 도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위해 모진 고통당하신 주님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무릎을 꿇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아버지의 애끓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 감사하고, 그 사랑에 감격하고, 그 사랑만 의지하고, 그 사랑을 나누며 살게 하옵소서. 더 이상 나만을 위해 살게 마시고, 이제는 오직 주님만 위해 살게 하옵소서. 주님, 지금 온 세상이 질병의 고통에 신음합니다. 우리의 연약함 아시는 주님께서 부디 우리를 외면치 마시고 주님의 선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치유하시고 감싸안아 주시옵소서. 이 질병의 위기가 지나는 동안 흠도 해도 없이 지키시며, 신앙의 밀도가 느슨해지지 않게 하시고 주님과 더욱 친밀해지게 하소서. 흩어진 자리에서 주님 뜻을 이루게 하시고, 이제는 함께 모여 주를 경배하는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매일의 삶 가운데 사랑의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부활의 꽃을 피워내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