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제목수요예배 가정예배문(04.01) 2020-04-012021-11-09 16:17

수요 가정예배문 

 

202041()

 

본문 : 태복음 14:22-27

제목 : 두려워 말라

찬송 : 432장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인간에게 두려움이란 창세기 때부터 생겨났습니다.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피하여 숨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4장에 보면 최초의 살인사건이 나옵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열납하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질투한 나머지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는 땅에서 피하고 유리하며 두려움 속에 살아왔습니다. 창세기는 50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2장은 하나님의 창조 당시 아름다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관용한 3~50장까지 두려움의 연속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은 두려움과 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자 파스칼은 두려움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하나는 믿음의 결과인 고결한 두려움이요 다른 하나는 의심과 불신의 산물인 사악한 두려움인데 전자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소망으로 인도해주고 후자는 절망으로 인도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신 사건 다음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자들은 낮에 2만 여명의 청중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무리 중에 병든 이들을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셨습니다. 또한 주님의 천국 복음 메시지는 모든 이들에게 소망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어느덧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축사하시고 나눠주셨는데 모든 무리가 다 배불리 먹고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무리를 보내시고 예수님은 산으로 홀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건너편을 향해 갔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거센 바람으로 파도가 치기 때문에 바다라고 부르기도 하고, 민물이기 때문에 호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갈릴리 바다는 동서가 13.32km, 남북이 20.72km되는 아주 큰 호수입니다. 이 큰 호수를 제자들이 중간 쯤 건너갔을 때 예기치 않던 돌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저녁을 먹고 출발한 그들이 밤 사경 그러니까, 새벽 4~5시 될 때까지 칠흑 같은 흑암 속에 바다 한 가운데서 큰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바다를 세상으로, 바다를 노 저어 가는 것을 생의 노정으로, 바다에서 만난 거친 바람을 살면서 직면하는 고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이나 고통이 없이 탄탄대로를 달리는 만사형통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인생은 크고 작은 고난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고난과 고통을 주실까요? 거기에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성경은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악인의 고난은 그 자체가 형벌이요 저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겪는 시련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관심이요, 고난 중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요, 시련을 겪는 성도는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의 표적입니다. 비바람을 겪은 뒤 곡식은 알차게 익어갑니다. 거친 세월이 지난 후 위인이 배출됩니다. 요셉이 그러했고 욥이 그러했고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절망적인 순간에 찾아오십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 사경을 헤매는 절망적인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외면치 아니하시고 찾아 오셔서 풍랑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기독교는 찾아오신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는 찾아가는 종교입니다. 고행과 수행, 수양 등을 통해 찾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제자들이 칠흑 같은 흑암 속에서 사방을 분간치 못하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해도 갈 수 없듯이, 철저히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에게 육신을 입고 찾아오신 종교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 놓고 죽던지 살던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죄악을 속량하시고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어떠한 고난과 역경을 당한다 할지라도 두려워 말고 능력의 주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피조물을 한 손에 쥐시고 임의대로 주장하시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전능하신 분임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두운 밤 제자들에게 부닥친 환경은 만물의 영장이라 여기던 인간의 무기력함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아주 작은 미물인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에 의해 온 세상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피조물 가운데 가장 초라해진 이 절박한 상황에서 위급하고, 외롭고, 고독한 절망과 체념에 놓인 바로 그들에게 주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그 누구도 도와 줄 수 없는 절대 절명의 위급한 순간에 아무도 상상치 못할 사망을 깨뜨리고 사탄을 제어하고 자연을 주관하는 메시야의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캄캄한 밤중에 그것도 바다 한가운데서 갑자기 만난 폭풍은 최악의 위기요, 절박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바로 이 위기의 현장으로 주님은 찾아 오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주님의 때에 찾아오십니다. 제자들은 폭풍을 만나 도저히 앞으로 저어 나갈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파도는 뱃전에 들이치고, 거의 밤새도록 바다 가운데서 맴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해결코자 노력했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그들의 머리 속에 주님이 계셨다면하는 생각과 함께 간절히 주님을 불러보았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주님은 오셨습니다

 

저도 가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세상이 저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까? 이 교회가 저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까? 만일 이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고, 교회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하나님이 돌아보십시오. 저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불가능함을 깨달았을 때 우린 이렇게 주님께 기도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한계를 깨달으셨습니까?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37:5-6에서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시고 빛 같이 영화롭게 하실 주님을 의지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안심해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위의 파도와 바람을 바라본다면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처럼 물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은 늘 우리의 마음을 불안케 하나 주님은 우리 심령에 평안을 주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 볼 때 안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의 한마디에 자연세계가 순종했습니다. 바람도 그치고 물결도 잠잠해졌습니다. 세파에 밀려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안심하라, 두려워말라라고 하시는 주님의 전능하심에 오늘도 우리의 삶을 맡겨보심이 어떠하겠습니까? 질병의 위기로 부터, 경제적 위기 그리고 신앙과 삶의 위기가 우리를 둘러 두려움에 처할 때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내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전능하신 주님을 의지하며 담대함으로 많은 위기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기도 :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부족함을 아시오니 우리에게 한 없는 능력과 사랑으로 우리를 보살펴주옵소서.

내 자신의 능력과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전능하신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혹여나 닥쳐온 어려움과 위기를 주께서 두시는 담대함으로 이겨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절망의 때에, 한계를 경험하는 순간에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말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금 절망의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