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게시판

제목성년이 된 신암의 젊은이들에게 채희걸 2009-05-182021-12-15 12:56

오늘 성년을 맞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지난주는 어버이 주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성년이 된 자녀와 이미 성년이 된 젊은이들과 어버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비로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자적인 존재가 됩니다. 특히 이때 여러분은 새삼스럽게 과거에 대해서 반성적이고 회의적이며 비판적이고, 과거로부터의 해방과 이탈을 바라게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그만큼 성장한 증거입니다.

한편, 여러분의 어버이들은 50대 전후의 중년으로, 그 분망함은 여러분의 행동에 대해 쉽게 이해할 만한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따라서 지금이 여러분과 어버이 사이에 트러블이 일어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여러분은 어버이의 이런 몰이해에 대해 불평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버이와는 세대 차가 난다고들 흔히 말합니다. 그러나 어버이와 여러분의 대립에서 세대 차가 전면에 부각될 만큼 급박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립의 주된 이유는 이런 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어버이는 자녀가 위태로워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은 풍부하고, 그 말은 논리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론은 추상적일 뿐이고, 여러분의 소유물이 될 정도로 소화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나아가서 이를 실행에 옮기려면 오랜 삶의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버이의 풍부한 경험에서 보면, 여기서도 여러분들이 위태롭게 보여 불안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론보다도, 경험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부모님의 신용을 얻고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공통의 전제가 있으므로 이야기는 금방 통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버이는 갓난아이였을 때부터 여러분을 길러 왔기 때문에 여러분이 언제나 어린아이로만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버이를 설득하지 못하는 자녀의 의견은 어딘가 무리가 있고 부자연스러움에 틀림이 없습니다. 부모를 설득하는 일은 힘들지만, 부모를 설득하지 못하는 자녀는, 친구도 그 어느 누구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정열과 논리의 위엄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나치게 어버이의 대변자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버이의 아집은 괴로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버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냉담할 수 있습니다. 아집의 이면에 감추어진 어버이의 사랑에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자녀는 자녀답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간답지도 못합니다.

나는 자녀로서의 성인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가능한 한 어버이와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이론을 현실로 되돌리기 위해서, 또한 여러분의 현재를 과거로부터 단절시키지 않기 위해서 가능한 한 친구와 대화하듯이 어버이와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어버이가 자녀를 인간으로서 평가하고 자녀가 어버이를 인간으로서 존경한다면 그들은 서로 지기(知已)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학문을 하고 이론을 따지더라도 결국 여러분은 어버이의 자녀입니다. 어버이의 자녀에 대한 감화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칸트를 합치더라도 이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어버이는 조국이나 고향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을 본연의 자아로 되돌아가게 하는 인스피레이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성인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격자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의 앞길에는 결코 장미꽃만 뿌려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가시밭길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이제 그 길을 여러분은 혼자 걸어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앞길에 주님의 보살핌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10년 전 오늘 성년의 날 오후예배 격려사에서

seagull